밥 짓기를 시작하며
한눈에. 저는 다섯 살에 신우신장염을 앓았고, 서른아홉에 건강검진표에서 사구체여과율 53이라는 숫자를 받았습니다. 먹는 것을 바꾼 뒤 그 숫자는 달라졌지만, 왜 달라졌는지 저는 아직 다 알지 못합니다.
이 글은 답이 아니라, 밥 짓기가 어떤 물음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적은 글입니다.

고무줄 자국

다섯 살 때의 일입니다.
유치원 모자에는 턱에 거는 고무줄이 있었는데, 모자를 벗고 반나절이 지나도 얼굴의 고무줄 자국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반복되는 그 자국을 보고 엄마는 아이 몸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챘다고 합니다.
엄마는 그때 막내동생을 가진 만삭의 몸이었고, 너무나 놀란 나머지 저를 데리고 부산의 큰 병원으로 가는 길에 내내 울었다는 이야기를 저는 여러 번 들었습니다.
신우신장염.
신장에 탈이 났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너무 작아서 수술은 할 수 없었고, 여섯 달쯤 병원을 다니며 항생제 주사를 맞았습니다.
만삭의 엄마 대신 할머니 손을 잡고 가던 병원에서 들은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지금도 또렷합니다.
"아이고, 이 조그만 엉덩이에 주사를 더 놓을 데도 없네."
그 뒤의 서른 해
몸은 좋아졌고, 저는 자랐습니다.
우리 가족은 밀가루 음식을 좋아했고, 저는 편식이 잦은 데다 단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자라면서 입안은 자주 헐었습니다. 단 음식을 좋아하다 보니 살도 쉽게 쪘는데, 신경 쓰면 잘 빠지다가도 금세 다시 쪘고, 그때마다 최고 몸무게를 새로 썼습니다.
중학생 때부터는 두통이 심해 거의 매일 진통제를 먹던 때가 있었고, 많게는 하루 여섯 알이었습니다. 운동만 하면 감기에 걸렸고, 강아지를 스무 해나 키웠는데도 개털뿐 아니라 알 수 없는 것들에까지 알레르기가 생겼습니다.
왜일까?
저는 오래 장을 의심해 왔습니다. 어릴 때 오래 맞은 항생제, 그 뒤로 건강에 무지해서 돌보지 않은 장, 그리고 밀가루와 단것으로 채운 식단을요.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짐작입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짐작인지는 뒤에서 따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숫자 53

서른일곱에 늦은 출산을 했고, 서른아홉이 되던 해에는 몸이 급하게 무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검진을 미루고 미루다 11월에야 받았습니다.
사구체여과율 53. 재검.
의사는 이 추세라면 쉰 살이 되기 전에 투석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쉰 살이면 아이는 열세 살입니다. 열세 살 아이 곁에서 투석하는 엄마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은행에서 일하던 때여서였을까요. 은행원은 숫자를 그냥 넘기지 못합니다. 그런데 정작 제 몸의 숫자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62일
병원에서 들은 말은 체중을 좀 줄여 보고 다시 오라는 것 하나였고, 다른 처방은 없었습니다.
그 무렵 동료의 소개로 매일 먹던 밥 세 끼, 먹는 것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처음 마음은 체중감량이라도 제대로 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62일을 보내고, 첫 검사에서 석 달쯤 지나 같은 병원을 다시 찾았습니다.
사구체여과율 87.

그 방법의 이름은 이 마루에 적지 않습니다. 이 글은 무엇을 권하려는 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를 밝힙니다. 그때의 인연이 지금 제 일이 되어, 저는 건강을 나누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숫자를 더 조심해서 씁니다.
이 숫자를 세 칸으로 나누어 봅니다
결과가 달라져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무서웠습니다. 무엇이 저를 바꾸었는지 지금 알아내지 못하면, 다음에는 제 건강을 지킬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저는 그때의 숫자를 이렇게 나누어 봅니다.

| 구분 | 내용 |
|---|---|
| 검증된 것 | 사구체여과율은 대개 혈액의 크레아티닌으로 계산한 추정값입니다. 근육량, 먹은 것, 몸의 수분 상태에 따라 움직입니다. 한 번의 수치로 만성 신장병을 말하지 않고, 석 달 넘게 이어지는지를 봅니다. (출처 1) |
| 모르는 것 | 제 숫자가 왜 53에서 87이 되었는지. 체중이 줄었고, 먹는 것이 달라졌고, 재는 날의 몸 상태도 달랐을 것입니다. 그중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가려낼 수 없습니다. |
| 과장된 것 | "먹는 것을 바꾸면 신장이 낫는다." 한 사람의 숫자 두 개는 증거가 아닙니다. 제 이야기는 체험이고, 체험은 궁금증의 시작일 뿐, 답은 아닙니다. |
혹시 신장 수치 때문에 걱정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제 이야기에 기대지 마시고 꼭 병원에서 다시 검사받고 의사 선생님과 상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장에서 만난 이름, 글리칸
그날부터 영양과 몸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오래 의심해 온 장부터 찾아보았습니다. 거기서 처음 만난 이름이 글리칸, 곧 당사슬입니다.
검증된 것. 장 안쪽은 점액으로 덮여 있고, 그 점액의 뼈대인 뮤신은 당사슬을 빽빽하게 입은 단백질입니다. 이 당사슬이 물을 붙잡아 점액을 끈끈하게 만듭니다. (출처 2) 항생제가 장내 미생물의 구성을 바꾼다는 것, 특히 짧은 기간의 변화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출처 3)

그럴듯한 것. 항생제의 흔적이 몇 해씩 남을 수 있다는 관찰이 있습니다. 스웨덴 성인 약 1만 5천 명을 본 연구에서 일부 항생제는 4~8년 뒤의 장내 미생물 구성과도 이어져 있었는데, 관찰 연구인 데다 항생제 종류에 따라 차이가 컸습니다. (출처 3) 장과 신장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연구도 쌓이고 있으나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모르는 것. 다섯 살의 항생제가 제 서른 해의 증상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며, 이제 와서 확인할 길도 없습니다.
제 짐작은 아직 '모르는 것' 칸에 있습니다. 그래도 그 짐작이 있었기에, 저는 제 몸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맺으며
먹는 것에 무언가 비밀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냥, 세 살배기를 둔 서른아홉 살 엄마가 살기 위해 시작한 몸 공부였습니다. 이제는 함께 공부해 보자고 이 마루에 올립니다.
밥 짓기는 글리칸에서 시작합니다. 다음 글, 「글리칸이란 무엇인가」에서 이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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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현 지음
출처
- KDIGO CKD Work Group. KDIGO 2024 Clinical Practice Guideline for the Evaluation and Management of Chronic Kidney Disease. Kidney International 2024;105(4S):S117–S314.
- Brockhausen I 외. O-GalNAc Glycans. Essentials of Glycobiology, 4판, 10장. Cold Spring Harbor Laboratory Press. https://www.ncbi.nlm.nih.gov/books/n/glyco4/ch10
- Baldanzi G, Larsson A, Sayols-Baixeras S 외. Antibiotic use and gut microbiome composition links from individual-level prescription data of 14,979 individuals. Nature Medicine 2026. 웁살라대학교 보도자료: https://www.uu.se/en/press/press-releases/2026/2026-03-11-antibiotics-can-affect-the-gut-microbiome-for-several-years